목양칼럼
인간의 삶은 태어남과 동시에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도,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누렸던 이도,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야말로 죽음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사건입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 피할 수 없는 결말 앞에서 비로소 현재의 의미와 영원의 가치를 묻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죽음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얼굴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이는 평생의 미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거둡니다. 세상의 것을 놓지 못해 발버둥 치는 모습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반면 어떤 이는 평안과 감사로 가득 찬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죽음의 얼굴은 결국 그 사람이 평생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으며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적인 성적표와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하늘의 천사와 같은 거룩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죽음은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고 믿음 안에서 삶을 마치는가의 문제입니다. 희망 없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갑자기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후회 없는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매일의 삶 속에서 영원한 가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소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이 작은 순종과 사랑의 실천들이 모여 우리의 영혼을 굳건하게 하며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도 흔들림 없는 평안을 주는 힘이 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대강절은 2천 년 전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할 뿐 아니라 세상 끝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영적 준비의 절기입니다. 이러한 대강절의 정신은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귀한 절기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동시에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여 더욱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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